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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2026.10.23 읽기 20분

서울연극창작센터_운생동건축사사무소(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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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극창작센터 전경.
도로와 만나는 전면부에 계단과 테라스 등 여러 층위의 외부공간이 형성되어 있다.



Q1. 간단한 자기소개와 함께 서울연극창작센터 프로젝트에서 맡으신 역할을 소개해 주세요.

안녕하세요. 운생동건축사사무소의 김봉균입니다. 서울연극창작센터는 설계공모 당선 이후 실시설계와 여러 기관·주민과의 협의, 시공 과정을 거쳐 준공에 이르기까지 오랜 시간 함께한 프로젝트인데요. 저는 공모 단계에서 제안한 핵심 개념을 실제 공간으로 발전시키고, 공연시설의 전문적인 요구와 지역의 공공성을 조율하는 등 설계 전반을 총괄했습니다.


Q2. 서울연극창작센터는 연극인을 위한 전문적인 창작·공연시설이면서 지역 주민과 시민에게 열린 문화공간이기도 한데요. 계획 초기, 대상지의 기존 조건을 살피면서 가장 중요하게 고려한 점은 무엇이었나요?

이 대지는 오랫동안 지역 주민들이 오가던 관습로이자 체육공원으로 사용되던 장소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공연장의 기능을 배치하는 것보다 먼저, 기존의 이동과 생활을 끊지 않으면서 새로운 문화시설을 받아들이는 일이 중요했습니다. 저희는 이 땅에 축적된 시간과 장소성을 읽고, 주민들의 일상적인 활동을 이어갈 수 있는 공공공간을 확보하는 것을 계획의 출발점으로 삼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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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안과 준공작의 대지 관계.
도로와 주변 도시 조직, 기존 공원과의 관계를 바탕으로 건물과 외부 공간을 계획했다.



Q3. 기존의 이동과 생활을 끊지 않는 것이 중요했다고 말씀해 주셨는데요. 이러한 생각을 실제 건축으로 구현하는 과정에서 배치와 공간 구성은 어떻게 풀어가셨나요?

기존 관습로를 보존하는 데 그치지 않고, 건축을 관통하는 입체적인 길로 전환했습니다. 또 이 길이 각 층의 공연·창작·교류 프로그램과 자연스럽게 접속하도록 배치하고, 지상에서 줄어든 공원 공간은 테라스와 옥상공원으로 확장해 보완했습니다. 무엇보다 배치와 단면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건물의 프로그램보다도 도시의 흐름과 공공성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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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안의 스트리트 갤러리 개념과 준공된 내부 보행 공간.
서로 다른 레벨의 계단과 통로를 연결해 이동 자체가 건축 내부의 경험으로 이어지도록 계획했다.



Q4. 계획안에서 제안한 ‘건물을 관통하는 길’은 준공작에서도 중요한 공간적 특징으로 이어졌는데요. 실시설계와 시공을 거치면서 이 길을 지금과 같은 입체적인 보행체계로 발전시키기 위해 어떤 점을 고민하셨나요?

공공보행통로가 단순히 목적지로 향하는 통과 공간에 머물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그래서 길을 따라 연극아카이브, 스트리트갤러리, 외부 연습·공연 공간과 휴게 공간을 배치해 이동 중에도 연극인의 활동과 주민의 일상이 서로를 인식하도록 했습니다. 또한 대지의 큰 고저차를 여러 층의 진입 레벨로 바꾸면서, 하나의 건물 안에 여러 개의 도시 바닥이 이어지는 보행체계가 만들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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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내부를 잇는 보행 공간. 여러 층의 프로그램과 공용 공간이 통로를 사이에 두고 시각적으로 연결된다.



Q5. 여러 층에서 도시와 직접 연결되는 구조도 눈에 띕니다. 일반적인 공연시설과 비교했을 때 이러한 보행체계가 이용자의 경험에 어떤 차이를 만든다고 보셨나요?

일반적인 공연시설이 정해진 입구를 통해 들어가 관람 후 나오는 폐쇄적인 구조라면, 이 건물은 여러 레벨에서 도시와 접속하며 공연을 보지 않는 사람도 자연스럽게 통과할 수 있습니다. 실시설계 과정에서는 주민 요청을 반영해 유모차와 이동약자도 사용할 수 있는 외부 엘리베이터를 추가했습니다. 공공보행통로와 엘리베이터는 공연 및 시설 운영시간과 별개로 이용할 수 있으며, 지금도 지역 주민의 일상적인 이동을 돕는 도시의 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Q6. 공모 당시에는 전면광장, 기존 성벽과 보행로, 야외공연장과 자연공원을 ‘세 개의 소통 보이드’로 설정하셨는데요. 준공까지 설계를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이 개념은 어떻게 변화했고, 어떤 방식으로 이어졌나요?

공모안의 ‘세 개의 소통 보이드’는 전면광장, 기존 성벽과 보행로, 야외공연장과 자연공원을 각기 다른 공공의 장면으로 조직하는 전략이었습니다. 하지만 착수 이후 공연장 구성과 주민편의 프로그램이 크게 조정되면서 세 개의 보이드가 원형 그대로 유지되지는 못했습니다. 대신 연극아카이브와 공공보행통로, 각 층의 외부공간이 그 역할을 이어받았습니다. 결과적으로 형태는 달라졌지만 연극과 지역의 일상을 만나게 한다는 초기의 생각은 입체적인 길을 통해 이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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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공모 당시 제안한 ‘열린 공유건축’ 개념.
전면광장과 기존 보행로, 야외공연장과 자연공원을 중심으로 세 개의 소통 공간을 계획해 지역주민과 이용자, 공연 프로그램의 관계를 입체적으로 연결했다.



Q7. 공모안의 공간 개념이 변화하는 과정에서 공연시설의 프로그램과 운영 조건도 구체화되었을 텐데요. 이러한 요구에 따라 공연장과 주변 공간은 어떻게 재구성되었나요?

가장 큰 변화는 중앙의 야외공연장과 이를 둘러싼 보이드 체계였습니다. 착수 이후 서울시가 창작연극센터 TF를 구성하면서 공연시설의 전문성과 운영 요구가 구체화되었고, 공모안의 두 블랙박스극장은 전문공연장 1개소와 블랙박스극장 1개소로 재편되었습니다. 여기에 성북구와 주민들이 요청한 생활편의 기능이 더해지면서 전체 단면과 프로그램을 다시 조직해야 했습니다.


Q8. 서울연극창작센터는 공연을 선보이는 공간뿐 아니라 연습, 기록, 교류 등 공연이 만들어지는 과정까지 함께 담고 있는데요. 이러한 ‘창작 과정’을 하나의 건축 안에서 어떻게 연결하고자 하셨나요?

서울연극창작센터는 완성된 공연을 보여주는 장소만이 아니라, 초연을 준비하는 신생·영세 극단의 창작 과정을 지원하는 정책적 시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과보다 과정에 주목했습니다. 연습실과 리딩룸, 공유오피스에서 작품을 만들고, 아카이브에서 기존 공연 영상과 대본, 의상과 소품을 공유하며, 마지막에 무대에 오르는 일련의 흐름을 하나의 건축 안에 담고자 했습니다. 또 이러한 창작의 과정이 주민에게도 자연스럽게 드러나도록 공공보행통로와 연결해 접근의 문턱을 낮췄습니다.


Q9. 이러한 창작 과정이 여러 층에 걸쳐 배치되어 있다는 점도 흥미로운데요. 서로 다른 프로그램을 수직적으로 조직하면서 공간 사이의 관계는 어떻게 설정하셨나요?

1층의 블랙박스 극장과 4·5층의 전문공연장 사이에 창작 과정을 단계적으로 배치했습니다. 2층에는 연극아카이브를 두어 배우와 연출자, 지역 주민이 만나는 접점을 만들고, 3층에는 극단이 사용하는 공유오피스와 회의 공간을 배치해 연극인 사이의 교류가 일어나도록 했습니다. 공연장과 지원시설을 단순히 층별로 분리하기보다, 공공보행통로와 외부공간을 매개로 서로의 활동이 보이고 이어지는 수직적 관계를 중요하게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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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극창작센터 단면도. 공연장과 창작 지원시설을 층별로 배치하고, 공공보행통로와 외부공간을 통해 연결했다.



Q10. 완공된 서울연극창작센터에서 이곳의 성격을 가장 잘 보여준다고 생각하는 공간은 어디인가요? 그 공간을 중요하게 보시는 이유도 궁금합니다.

가장 중요한 공간은 2층의 연극아카이브와 공공보행통로에 면한 외부 연습·공연 공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카이브는 공연의 결과뿐 아니라 연극을 만드는 시간과 기억을 공유하는 곳이고, 외부공간은 그 일상적인 창작 장면을 도시 쪽으로 열어 줍니다. 주민이 특별한 목적 없이 길을 지나면서도 연극인의 활동을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서울연극창작센터만의 성격을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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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자들의 활동이 이어지는 공용 공간. 이동과 머무름, 전시와 교류가 한 공간에서 겹쳐 일어난다.



Q11. 서울연극창작센터가 실제 공연이 이루어지는 전문 공연시설인 만큼, 무대 뒤에서 이루어지는 준비와 운영까지 세심하게 고려해야 했을 것 같은데요. 설계를 구체화하면서 가장 많은 조정이 필요했던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공모안의 공간 개념을 전문 공연시설로 구체화하기 위해 공연장 주변의 구조와 지원 동선을 대대적으로 수정해야 했습니다. 대형 물품과 무대 장치를 반입할 수 있는 하역 동선을 확보하고, 측무대와 프로시니엄, 무대기계 및 스태프 공간을 추가했습니다. 결국 관객에게 보이는 객석과 무대뿐 아니라 그 뒤에서 작동하는 준비·분장·하역의 체계를 완성하는 일이 가장 많은 조정을 요구했습니다.


Q12. 공연장의 전문성을 갖춰가는 과정에서는 구조나 설비, 예산 등 현실적인 조건과의 조율도 필요했을 텐데요. 초기의 공간 구상과 이러한 요구를 어떻게 조율하셨나요?

공연장의 전문성이 강화되면서 구조와 설비, 무대장비의 요구가 커졌고, 이는 초기 공간 구상뿐 아니라 전체 예산과도 충돌했습니다. 우선 건축적으로는 향후 장비를 수용할 수 있도록 무대부의 체적과 구조, 반입 조건을 확보했습니다. 다만 한정된 예산 안에서 모든 장비를 동시에 설치하기 어려워 발주처가 공사를 단계별로 추진했고, 조명·음향 등 일부 운영 장비는 후속 공사에서 보완하는 방식으로 조율했습니다.


Q13. 여러 단계에 걸쳐 공연시설을 보완하면서 준공작의 완성도 역시 달라졌을 텐데요. 실제로 개선된 부분은 무엇이었으며, 설계자로서 아쉬움이 남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단계별 보완 과정에서 공연장의 실질적인 완성도는 높아졌습니다. 조명과 음향, 무대장비뿐 아니라 객석 의자까지 실제 공연의 운영 조건에 맞춰 보완하면서 공간의 밀도와 격이 높아졌습니다. 다만 이러한 사항이 설계 초기부터 운영 주체와 충분히 협의되었다면, 공간과 장비를 더 통합적으로 완성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도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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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장 내부. 무대와 객석을 중심으로 공연에 필요한 전문 시설과 공간을 구성했다.



Q14. 공연을 극장 안에 한정하지 않고, 건축 곳곳이 하나의 ‘무대’가 될 수 있다고 보셨는데요. 이러한 생각이 준공된 서울연극창작센터에서는 어떤 공간을 통해 가장 잘 드러난다고 보시나요?

스트리트갤러리와 공공보행통로, 옥상공원 모두 ‘공연장 밖도 무대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담고 있습니다. 그중 현재 가장 적극적으로 사용되는 곳은 2층 외부공간과 옥상정원이라고 봅니다. 이곳에서는 이동과 휴식, 전시와 작은 행위가 겹치며, 정해진 객석 없이도 사람의 움직임 자체가 하나의 장면을 만듭니다.


Q15. 실제로 공간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설계 당시에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가능성도 발견하셨을 것 같은데요. 일상적인 공간이 공연이나 행사를 위한 무대로 새롭게 활용된 사례가 있었나요?

예상보다 적극적으로 무대화된 곳은 공유오피스와 연결된 3층 외부공간입니다. 처음에는 연극인들의 휴식과 교류를 위한 여백으로 생각했지만, 실제 운영 과정에서 작은 공연과 행사를 수용할 가능성이 확인되었습니다. 그래서 최소한의 공연 장비와 소음을 차폐하기 위한 시설을 더해, 일상 공간이 필요에 따라 무대로 전환될 수 있도록 보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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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안에서 제안한 ‘도시무대’와 준공 후 외부 공간의 사용 모습. 계단과 마당, 외부 공간을 공연뿐 아니라 일상의 다양한 활동을 수용하는 무대로 계획했다.



Q16. 서울연극창작센터는 공연을 관람하는 시민부터 지역 주민, 연극인, 운영 인력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이용하는 공간인데요. 각자의 이용 방식이 다른 만큼 동선을 연결하거나 분리하는 기준도 필요했을 것 같습니다. 이를 어떻게 조율하셨나요?

동선은 ‘서로를 느낄 수 있도록 연결하되, 운영에 필요한 부분은 분명히 분리한다’는 원칙으로 계획했습니다. 그래서 서측에는 관객과 외부 이용자를 위한 코어를, 동측에는 연극인과 운영 인력, 물품 반입을 위한 코어를 두었습니다.


Q17. 동선을 분리하더라도 시민과 연극인의 활동이 완전히 단절되지는 않도록 하는 것도 중요했을 것 같은데요. 서로의 존재와 활동을 자연스럽게 인지할 수 있도록 마련한 공간적 접점은 어디인가요?

주민이 공공보행통로를 지나 한성대입구역과 성북동 사이를 오가는 동안 연극아카이브와 외부 연습 공간, 공연 안내를 자연스럽게 마주하도록 했습니다. 건물 전면의 버스정류장과 공개공지를 이용하는 사람도 내부 활동의 일부를 인지할 수 있습니다. 직접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않더라도 연극이 이 동네에서 만들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일상 속에서 감지하게 하는 것이 중요한 접점이었습니다.


Q18. 처음에는 외부공간을 공원처럼 열어 두는 것을 구상하셨지만, 실제 공연시설을 운영하다 보면 안전과 보안, 관리의 문제도 함께 고려해야 했을 텐데요. 계획 당시 생각했던 개방성과 실제 운영 조건 사이에서 어떤 조정이 필요했나요?

공모 당시에는 공연장을 제외한 외부공간을 공원처럼 24시간 개방하는 것을 목표로 했습니다. 그러나 실제 운영 주체가 정해지고 안전사고와 야간 관리, 공연시설의 보안 문제가 구체화되면서 개방 범위를 조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범죄예방환경설계와 CCTV 등을 반영했지만, 옥상과 여러 층의 테라스는 추락·야간 안전과 시설 관리의 책임까지 함께 고려해야 했습니다. 이에 공공보행통로와 외부 엘리베이터는 24시간 개방하되, 이에 접한 2·3층 외부공간과 옥상정원은 운영시간에 따라 통제하는 방식으로 공공성과 관리 가능성 사이의 균형을 찾았습니다. 건축적으로 공간을 여는 것만으로 운영의 문제까지 모두 해결할 수는 없다는 점을 확인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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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부 외부 공간. 건물 내부의 동선이 옥상과 외부 공간까지 이어지며 이용자에게 열린 공간을 형성한다.



Q19. 개방성과 관리 사이에서 조정한 공간들이 실제로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현재 서울연극창작센터에서 계획 당시 의도한 공공성이 가장 직접적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느끼는 곳은 어디인가요?

공공보행통로와 외부 엘리베이터에서 그 모습을 가장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경사가 큰 동네에서 어르신들이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이동하고, 사람들이 보행통로의 스탠드에 앉아 쉬거나 약속 장소로 사용하는 모습을 자주 봅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 공연을 보러 온 사람이 아니어도 이 건물을 자신의 일상적인 길과 장소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걸 느끼게 됩니다. 그럴 때 처음 계획했던 공공성의 의미가 실제로 잘 작동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Q20. 계획안에서 제안한 ‘천 개의 벽(Thousand Walls)’은 벽을 건축 곳곳으로 확장해 서로 다른 공간과 장면을 만들어내는 개념이었는데요. ‘벽’이라는 요소에 주목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또 이 개념을 실제 건축으로 구현하면서 중요하게 생각한 부분도 궁금합니다.

‘천 개의 벽’은 대학로와 공연문화의 기억을 담고 있는 붉은 벽돌에서 시작했습니다. 대학로에 쌓여 있는 연극의 시간과 여러 시대의 분위기를 새로운 장소로 가져오고 싶었지만, 그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벽 역시 공간과 프로그램을 단절하는 경계라기보다 서로 다른 장면을 만들고 관계를 이어 주는 요소라고 생각했습니다. 또 벽돌과 노출콘크리트처럼 시간이 지나면서 표정이 깊어지는 재료를 통해 이곳에서 새롭게 이어질 연극의 이야기를 담고자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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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개의 벽’ 개념 다이어그램.



Q21. ‘천 개의 벽’이라는 개념을 실제 건축으로 구현하는 과정에서는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계획했던 것과 달라지거나 끝까지 구현하기 어려웠던 부분도 있었나요?

처음에는 벽을 단순한 조형이나 마감이 아니라 건축을 작동시키는 하나의 시스템으로 생각했어요. 그래서 벽의 두께 안에 가구와 설비, 전기 배선, 우수관과 각종 샤프트를 통합해 공간을 정돈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실제 시공 과정에서는 디테일의 난이도와 하자 책임에 대한 우려가 있다 보니 일부 요소가 분리되거나 덧붙여졌습니다. 결국 벽이 구조·설비·가구를 통합하는 수준까지는 충분히 구현되지 못했습니다. 공간적으로는 ‘천 개의 벽’이 만들어내는 리듬이 남아 있지만, 하나의 시스템으로 끝까지 완성하지 못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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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과 슬래브, 계단과 보이드가 중첩된 전면부. 벽은 외관을 구성하는 요소인 동시에 내부와 외부 공간의 관계를 조정한다.



Q22. 설계공모 당선 이후 실시설계와 시공을 거쳐 준공에 이르기까지 여러 변화가 있었는데요. 계획안과 현재의 서울연극창작센터를 비교했을 때, 공간과 프로그램 측면에서 가장 크게 달라진 부분은 무엇인가요?

가장 큰 변화는 공모안의 세 개 보이드와 두 블랙박스극장 중심의 구성이, 전문공연장과 블랙박스극장, 연극아카이브와 공공보행통로 중심의 체계로 재편된 점입니다. 형태와 프로그램은 상당히 달라졌지만, 연극의 창작 과정을 지원하고 지역 주민의 일상을 건축 안으로 받아들인다는 두 가지 원칙은 끝까지 유지되었습니다.


Q23. 이러한 변화에는 서울시와 성북구, 지역 주민 등 서로 다른 주체의 요구도 영향을 미쳤을 텐데요. 각 주체가 중요하게 생각한 부분은 무엇이었고, 이를 하나의 설계 안에서 어떻게 조율하셨나요?

가장 많은 조정이 필요했던 건 서로 다른 공공의 요구를 하나의 건축에 담는 과정이었습니다. 성북구 소유의 대지에 서울시가 시설을 건립하는 사업이었기 때문에, 서울시는 전문 공연·창작시설의 완성도를, 성북구와 주민들은 기존 체육공원과 생활편의 기능의 지속을 더 중요하게 보았습니다. 서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점이 달랐던 거죠. 그래서 두 기관의 관점 차이를 조율하면서 헬스·요가 프로그램과 주민자치 공간 등을 반영했고, 세 차례 주민공람회와 주민대표, 구·시 관계자들과의 보고 및 실무협의를 거쳐 계획을 수정했습니다. 과정이 길고 쉽지는 않았지만, 이런 조율을 거치면서 공연시설과 지역 생활이 공존하는 지금의 구조가 만들어졌습니다.


Q24. 앞서 형태와 프로그램이 달라지는 과정에서도 두 가지 원칙은 끝까지 유지했다고 말씀해 주셨는데요. 그중에서도 지역의 일상을 건축 안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어떤 의미였나요? 설계 과정에서 이 원칙을 어떻게 지켜나가고자 하셨는지도 궁금합니다.

끝까지 지키고자 한 핵심은 ‘지역의 일상을 끊지 않는 공공건축’이었습니다. 사실 공공건축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어도 실제로는 지역사회에 기여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저희는 좋은 공공건축이 특정 이용자만을 위한 완결된 물체가 아니라, 누구에게나 열려 있고 서로 공감하고 교감할 수 있는 장소여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주민의 의견을 가능한 범위에서 반영하면서, 권위적이거나 위압적인 시설이 아니라 친근하게 드나들 수 있는 건축으로 읽히도록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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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측면에서 바라본 외부 공간과 진입 동선. 서로 다른 레벨의 외부 공간과 건축 프로그램이 주변 도시와 접점을 만든다.



Q25. 여러 차례의 협의와 조정을 거치면서 초기 계획에는 없었지만, 결과적으로 서울연극창작센터의 공공성을 더 확장했다고 평가하는 변화도 있나요?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주민공람회에서 들었던 이야기예요. 한 어르신이 ‘다리가 아파 이 고바위를 오르기 힘드니 엘리베이터를 설치해 달라’고 강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설계자에게는 건물 내부의 수직동선이었던 엘리베이터가, 주민에게는 동네의 경사를 극복하는 생활 기반시설이었던 거죠. 그 의견을 반영해 외부 엘리베이터를 추가했고, 결과적으로 공모안보다 실질적인 공공성이 더 커졌다고 생각합니다. 현장의 목소리를 통해 건축이 지역사회와 관계 맺는 방식도 다시 생각하게 됐어요.


Q26. 계획 단계에서는 이용자와 활동을 예상하며 공간을 구성해야 했을 텐데요. 준공 후 실제 사용 모습을 지켜보면서 예상과 다르게 작동하거나, 기대만큼 활용되지 않는다고 느낀 공간이 있었나요?

연극인들이 장시간 머무는 건물인 만큼, 창작 중 잠시 나와 생각을 정리하거나 담소를 나눌 수 있는 발코니를 여러 곳에 마련했습니다. 그곳에서 연극인들의 고민이나 교류가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모습을 기대했어요. 그런데 실제로 사용해 보니 계절에 따른 추위와 더위, 운영상의 제약 때문에 예상만큼 활발히 사용되지는 않았습니다. 결국 외부공간은 면적을 제공하는 것만으로 완성되는 게 아니라, 기후 대응과 가구, 운영 프로그램까지 함께 설계해야 한다는 점을 알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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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측면에 층별로 마련된 발코니와 외부 공간. 실내 프로그램과 도시 사이에 여러 단계의 외부 영역을 두었다.



Q27. 반대로 설계 당시 예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사용되면서 공간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한 사례도 있었나요?

그런 면에서 공공보행통로는 예상보다 더 생활 속에 잘 자리 잡았습니다. 사람들이 약속 장소나 휴식 공간으로 사용하고, 2층 외부공간에 놓인 피아노를 점심시간마다 연주하는 분도 계십니다. 설계자가 구체적으로 정해 두지 않은 활동이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모습을 보면서, 연극인뿐 아니라 지역 주민이 각자의 방식으로 공간을 점유하고 새로운 장면을 만들어간다는 게 느껴져요. 결국 건축은 사용자가 들어온 뒤에 비로소 완성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Q28. 실제 이용 모습을 지켜본 경험을 바탕으로 이 프로젝트를 다시 설계한다면, 새롭게 접근하거나 보완하고 싶은 부분은 무엇인가요?

다시 설계한다면 공연장 부분을 가장 먼저 보완하고 싶습니다. 사실 이 프로젝트는 설계가 상당 부분 진행된 뒤에 운영부서와 구체적인 공연 방식이 정해졌습니다. 연극도 작품의 성격에 따라 필요한 잔향시간과 음향, 조명, 무대 시스템이 크게 달라지는데, 이러한 운영 조건이 늦게 확정되면서 준공 후 실제 공연을 위한 보완공사가 이어졌습니다. 그래서 다시 설계할 수 있다면 초기 단계부터 운영 주체와 주된 공연 형식을 확정하고, 건축·무대·음향·조명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설계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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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장의 무대와 상부 설비. 공연장 설계에서 건축과 무대, 음향, 조명 등 여러 전문 영역의 통합이 요구되는 공간이다.



Q29. 준공 이후 이용 모습을 지켜보면서, 계획 당시 생각했던 ‘일상적인 공공장소’의 모습이 실제로 구현되고 있다고 느낀 장면이 있었나요?

저희는 처음부터 이 건물이 공연을 관람할 때만 찾아오는 목적지가 아니라, 오가며 머물고 사람을 만나는 편안한 장소가 되기를 바랐습니다. 이를테면 저녁에 슬리퍼를 신고 편의점에 가듯 부담 없이 와서 앉고, 서로의 생활을 나누는 공간이었으면 했어요. 그런 공간이야말로 공공건축의 기본적인 덕목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점심을 먹으러 가거나 퇴근길에 지나며 사람들이 계단과 벤치에 자연스럽게 앉아 담소를 나누는 풍경을 보게 되는데요. 그럴 때면 비로소 이 공간이 완성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Q30. 설계공모부터 준공 이후의 사용까지 프로젝트의 전 과정을 돌아봤을 때, 서울연극창작센터에서 가장 중요하게 구현되었다고 평가하는 성과는 무엇인가요?

이 프로젝트의 출발점은 젠트리피케이션으로 대학로에서 밀려나는 영세 극단과 순수예술의 창작 기반을 지원하는 것이었습니다. 초연을 준비하는 극단에 연습실과 공유오피스, 아카이브와 공연장을 제공한 것이 첫 번째 성과입니다. 그리고 더 큰 성과는 기존 체육공원 부지를 연극인만을 위한 시설로 닫지 않고, 지역 주민의 이동과 휴식, 커뮤니티 활동을 함께 담는 건축적 대안을 만든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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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면 계단과 외부 공간을 이용하는 모습. 공연이 없는 시간에도 사람들이 오가고 머물 수 있는 일상적인 공공장소로 사용된다.



Q31. 설계와 시공의 전 과정을 돌아봤을 때, 건축가로서 가장 아쉬움이 남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가장 아쉬운 점은 설계와 시공 전 과정에서 여러 공종을 통합해 판단할 수 있는 협의 구조가 충분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공공 프로젝트에서는 건축·기계·전기·조경·토목의 감독관과 담당 부서가 나뉘어 있는데, 각 공종의 요구가 전체 공간 안에서 조정되기보다 개별 기준으로 전달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실제 사용이 어려운 장비를 계획에 반영하거나 샤프트, 전기실, 기계실이 필요 이상으로 커져 공간과 비용이 과도해진 부분도 있었습니다. 성북구와 서울시의 서로 다른 요구, 주민 요청에 따른 변경까지 겹치면서 설계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일도 쉽지 않았습니다.


시공 단계에서도 공종 간 협의가 원활하지 않아 설계 의도와 다른 결과가 생겼고, 일부 마감과 디테일은 시공사의 품질 관리 한계로 기대한 수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예를 들어 전면부의 천장 그릴과 벽체 금속 마감은 당초 계획과 다르게 설치된 우수관을 가리기 위해 사후에 덧댄 부분입니다. 기능적인 문제는 해결했지만, 그 과정에서 공간의 정직성과 디테일의 완성도는 손상되었습니다. 많은 관계자가 각자의 자리에서 노력했음에도, 통합적인 의사결정과 시공 품질 관리가 조금 더 치밀했다면 몇몇 공간은 더 높은 완성도로 남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Q32. 서울연극창작센터는 이제 실제 이용자들의 활동과 운영을 통해 계속 변화하고 있는데요. 앞으로 시간이 쌓이면서 이 건물이 어떤 방식으로 사용되고 변화하기를 기대하시나요?

서울연극창작센터는 순수예술인의 창작을 지원하는 공간인 동시에 지역 주민의 여가와 편의를 위해 마련된 장소입니다. 앞으로 서울시와 운영 주체가 주민과 함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꾸준히 만들고, 주민도 관객으로 머무르기보다 공간을 함께 만들어가는 주체로 참여하기를 바랍니다. 공연장뿐 아니라 공공보행통로와 연결된 외부공간, 아카이브와 커뮤니티 공간에는 아직 발견되지 않은 쓰임이 많다고 생각해요. 운영과 사용이 쌓이면서 이 여백들이 새로운 연극과 일상의 무대로 성장했으면 합니다.


Q33. 장기적으로 서울연극창작센터가 대학로와 성북동 일대의 연극 생태계와 지역사회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하기를 기대하시나요?

장기적으로는 대학로에서 성북동으로 확장되는 연극 생태계의 거점이 되기를 바랍니다. 젊고 작은 극단이 작품을 준비하고 자료와 경험을 공유하며, 첫 무대를 통해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는 창작의 기반이 되었으면 합니다. 동시에 지역 주민에게는 특정한 행사가 있을 때만 찾는 문화시설이 아니라 매일 지나고 머무는 동네의 공공장소로 자리 잡았으면 합니다. 연극과 도시의 일상이 서로를 지지하는 관계가 지속될 때, 이 건물도 시간과 함께 더 깊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진 남궁선, 운생동건축사사무소(주)


자료제공 운생동건축사사무소(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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