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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2026.10.22 읽기 16분

합의의 구조, 몰입의 외피

개념을 구현하는 건축: 설계에서 시공까지의 실험과 조율

오늘의 인터뷰를 통해 드리는 말씀은, 비단 저 혼자만의 생각과 이야기가 아닙니다. 믈라덴 야드리치 교수님을 포함하여 협업한 모든 사람들과 논의하는 과정에 얻은 내용입니다.

건축이 수많은 이들의 협업과 합의로 이루어지는 작업인 만큼, 서울시립 사진미술관에 담긴 많은 분들의 노고가 잘 전달되었으면 합니다.




Q. 믈라덴 야드리치 교수님과의 협업은 어떠했나요? 어떻게 협업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그 설계 과정은 어떠했는지 궁금합니다.

믈라덴 교수님과는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였습니다. 공모 작업 파트너를 찾는 말씀을 전해듣고 자연스럽게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교수님은 매우 호의적이고 인류애가 깊은 분이지만, 동시에 치밀하고 집요하십니다. 건축에 깊이 몰입하여 접근하시기에 의견이 간단히 모이는 경우는 드물었습니다. 하지만 교수님은 늘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지금 단지 과정 안에 있을 뿐이고, 결국엔 우리가 원하는 결론에 도달할 것이다.” 그런 긍정적인 태도로 팀의 분위기를 이끄셨죠.


물론 갈등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건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의견을 나누고 조율하느냐인데, 교수님은 항상 끝까지 경청하십니다. 상대의 말을 충분히 들은 뒤에도 자신의 입장이 분명할 땐 쉽게 물러서지 않으세요. 저도 마찬가지였기에, 어떤 날은 회의가 4시간 넘게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치열하게 논의하며 결국엔 합의점을 찾았습니다. 저 역시 작업에 몰두하는 스타일이라고 자부했지만, 이번 협업을 통해 ‘이렇게까지 집중할 수 있구나’라는 것을 새삼 느꼈고,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서울시립 사진미술관처럼 가분수 형태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1층 외벽이 자중 외에는 힘을 부담하지 않는 구조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을 실현시키는 과정에서 예상보다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습니다. 구조가 매우 도전적인 부분이었지만, 그 과정을 통해 새로운 형식을 실현해 낼 수 있었습니다.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건축물을 만든다는 건 단 한 번의 경험으로는 어렵습니다. 기존의 방식을 답습한다는 게 나쁘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정형화되고 시스템화된 틀에서 벗어나야 하죠. 그러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설득과 다양한 분야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믈라덴 교수님은 그런 전방위적인 지식과 집요함, 협업자에 대한 깊은 존중을 갖고 계셨어요.



Q. 그렇게 쌓아오신 노력들을 통해, 초기에 설정했던 설계 콘셉트나 의도가 완공까지 그대로 이어졌다고 보시나요?

건축가라면 누구나 처음 설정한 의도를 끝까지 유지하고자 하는 마음이 큽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것이 그대로 이어지기가 쉽지 않죠. 예를 들어 지금 우리가 인터뷰하고 있는 강의실만 해도 컬러나 비례가 꼭 만족스럽지만은 않아요. 물론 결과적으로는 동의했지만, 이러한 요소들은 사용자나 운영 목적에 따라 바뀔 수밖에 없는 부분들 이거든요. 사실 이런 변화가 공공 프로젝트의 속성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참여자 설계라는 공공프로젝트의 시대적 속성을 이해하고 있기에 사용자나 운영 목적에 따라 조정이 필요한 부분은 수용했습니다.


설계 공모는 사용자의 의지가 단일화된 상태로 진행되지 않기 때문에, 설계와 시공, 그리고 운영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용자와 관계자들의 의견이 반영되다 보면 원안과는 달라지는 지점들이 생깁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변하지 않고 끝까지 갈 수 있을까? 저희는 그 답을 ‘탐구’에서 찾았습니다.


저희가 처음부터 끝까지 놓치지 않았던 세가지 핵심적 특징은 첫째는 구조, 둘째는 외피, 셋째는 공간입니다. 이 세 가지는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부터 완공까지 지속적으로 탐구하며 지켜낸 부분이기 때문에, 의도가 실현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설계그룹의 작업의지를 고수하려는 단순한 고집이 아닙니다. 당선된 공모안에서의 ‘합의’를 지키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실시설계 과정에서 새롭게 동의해주신 분들과의 합의 역시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처음에는 공모안을 지키겠다는 마음이었는데, 설계가 끝날 무렵엔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한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일종의 사명감으로 바뀌더군요. 건축이란 결국 수많은 사람들의 합의로 이루어지는 작업이니까요.


한 가지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공모 당시 오른쪽 부분이 안쪽으로 들어간 형태였는데, 얼마 전 한 분이 왜 당선된 설계안이 변경되었는지에 대해 민원을 제기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공공 프로젝트에서 당선안을 임의로 바꿔도 되는가에 대한 우려였고, 건축을 문화로 인식한 관심에서 나온 질문이라 오히려 감사하게 느꼈습니다. 변경은 임의적인 결정이 아니라, 실제 적용 과정에서 더 나은 결과를 만들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습니다. 원안의 형태는 휘어져 들어올리는 동작이 시각적으로 잘 드러나게 하려던 것이었지만, 지면과 맞닿는 부분이 좁아지고, 입구 또한 좁고 낮아져 사용자의 경험에 불편함이 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조정이 필요했고, 그 판단은 충분한 논의를 거쳐 결정한 것이었습니다. 다만 이런 변화의 배경이 충분히 설명되지 못했던 점은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앞으로는 이러한 변경의 이유와 과정을 기회가 닿을 때마다 잘 설명드리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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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goong Sun


Q. 앞서 말씀하신 구조, 외피, 공간 중 ‘공간’에 대해 조금 더 여쭙고 싶습니다. 특히 전시 공간을 구성하면서 가장 중점적으로 고민하신 지점은 무엇인가요?

일단 공간을 구성한다는 것은 크게 세 가지 측면을 고려합니다. 첫째는 구조입니다. 건물이 지어질 때 기둥 속은 사용할 수가 없잖아요. 즉, 구조적으로 소비해야 하는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이 나눠져 있는 것이 건축의 일반적인 속성입니다. 두번째, 프로그램입니다. 어떤 기능을 가질 것인가에 부합해야 합니다. 셋째, 시대적인 도전이자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요소입니다.


첫 번째 구조적인 부분을 보면, 중앙으로 모으는 구성과 외피의 비틀어내는 개념을 실현하기 위해 구조는 가운데 십자 크로스 되어있는 코어(core)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두 번째인 프로그램 부분은 코어를 중심으로, 각 층이 4개의 공간 단위로 구성되도록 했습니다.

저희는 이 4개의 공간 단위가 전시 시설로서 얼마나 적합한 기능을 수행할 것인지에 대한 가능성을 믿었습니다. 일반적인 전시 공간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 순차적으로 이동하는 방식이 많지만, 코어를 중심으로 사방으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선택형 동선을 제안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외형을 비틀어 놓은 만큼 내부 공간도 외형부분의 특징이 공간적으로 크게 드러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전시관 내부를 보시면 외형 부분의 공간적 특징을 살린 흥미 있는 전시방법도 살펴보실 수 있습니다.




설계 공모는 사용자의 의지가 단일화된 상태로 진행되지 않기 때문에, 설계와 시공, 그리고 운영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용자와 관계자들의 의견이 반영되다 보면

원안과는 달라지는 지점들이 생깁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변하지 않고 끝까지 갈 수 있을까? 저희는 그 답을 ‘탐구’에서 찾았습니다.




Q. 설계공모 당시 심사평을 보니까 그 내부 공간의 발전 가능성을 조금 열어놨다는 평이 있던데요.

그 부분은 설계공모 지침상에 있었던 내용뿐만 아니라, 전시장의 기능과 관련해서 학예사분들과 협의하면서 수정 · 반영할 부분이 있다는 의미로 저희는 이해했습니다. 공모전 당시에는 1층의 리셉션 카운터가 훨씬 컸고, 복도 공간도 넓었으며 시민들이 주로 이용하는 북카페나 아트숍 같은 공간도 더 컸습니다.


하지만 실제 현장을 보니, 외부에서 전시물이 들어올 때 지원 시설이 충분히 갖춰져 있어야 좋은 전시가 가능하다는 점이 중요하더군요. 저희가 지하로 내려가는 화물 동선을 따로 크게 확보하기 어려운 조건이 있었거든요. 예를 들어 큰 화물차가 올 경우, 그 차를 위해서 주차 램프를 설치해 회전시키면 내부 공간을 쓸 수가 없으니 큰 차가 오더라도 외부에서 바로 물건을 내리고 갈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었죠. 큰 차가 올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큰 규모의 전시를 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배면에 전시 지원 시설을 많이 늘렸습니다. 또한 서울시 내부적으로 수유실이나 근로자들을 위한 다양한 공간에 대한 구체적인 제안이 마련되면서, 1층에 있던 홀이나 리셉션, 카페 공간은 다소 작아졌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균형 있게 배치되어, 뒤에 마련된 지원 시설 덕분에 이전과는 다른, 더 좋은 전시 환경을 갖추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과정은 공모가 끝난 후 큐레이터, 이용자, 서울시가 시민 의견을 반영해 만든 매뉴얼에 따라 진행된 것이어서, 사용자 입장에서는 더 나아진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다만, 당초 계획에 반영되지 않았던 부분이기 때문에 형태적으로 새롭게 수용하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고, 여러 변화가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희는 최대한 원래 의도한 바를 실현하려고 계속 노력했습니다.



Q. 건물 대부분이 노출 마감이고, 베이스패널(시멘트압축성형패널)이 루버 형식으로 사용되었다고 들었습니다. 또한, 건물 내외부가 강렬한 대비를 이루고 있는데, 이러한 자재와 마감 방식의 선택 이유와 건축적 의미에 대해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처음부터 콘크리트 루버를 만들겠다고 결정한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콘크리트가 하나의 물성으로 전체를 통일감 있게 표현할 수 있는 재료라고 판단한 거고요. 두 번째 이유는, 이 건물처럼 비틀려 있는 형태를 강조하려면 그것을 시각적으로 단순하고 직관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재료가 필요했어요. 예를 들어, 카드가 쌓여 있고 그것이 회전하는 듯한 이미지를 상상해보면 굉장히 단순하지만 강렬한 인상을 주죠. 그런 방법에서 출발한 디자인 개념이었습니다. 이처럼 수평선이 강조된 콘크리트로 만들기 위해 여러 방법을 시도했습니다. 콘크리트는 물처럼 흐르는 성질이 있기 때문에, 주름진 거푸집에 부으면 그 틈을 완벽하게 채우는 것이 어렵고, 탈형할 때 형태가 잘 유지되지 않거나 거푸집과 함께 들뜰 위험도 있었죠. 이러한 어려움 때문에 시공사 선정 전에 전문 시공사들과 여러 차례 협의를 진행했는데, 이 방식은 일반적인 시공 방식이 아니기 때문에 쉽게 구현하기는 어렵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결국 방법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프리캐스트 콘크리트(Precast Concrete)로, 즉 별도로 제작한 판을 만들어 조립하는 방식으로 전환했죠. 오히려 결과적으로는 개념이 더 발전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중 외피(Double Skin)의 구조를 형성하게 되어, 마치 건물이 겉옷을 입은 듯한 형태가 되었고, 단열성과 외부 환경에 대한 대응력도 좋아졌습니다.



Q. 이러한 실험적 시도를 실제로 구현해내기 위해 시공자와 어떤 방식으로 협업하셨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이나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었는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시공자분들도 굉장히 열정적으로 임해주셨습니다. 공사를 잘 마무리 하겠다는 태도를 넘어, 의미 있는 건물을 만든다는 자부심도 갖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이러한 태도는 기존에 익숙한 방식이 아니라, 새로운 것을 시도해보겠다는 의지에서 비롯된 것이고, 그래서 더 인상 깊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시도라는 것은 익숙하지 않다는 의미이기도 하죠. 예를 들어, 대부분의 시공사는 내부바닥을 콘크리트 폴리싱만으로 최종 마감을 마치는 경험이 많지 않기 때문에 시행착오도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나중에 시공한 4층의 시공품질이 더 좋게 나왔습니다. 


공공 프로젝트에서 시공사 선정 시에 건축물의 용도 외 ‘어떤 퀄리티의 공간을 수행했는가’가 잘 반영되지는 않는 것이 현실입니다. 일반적으로 PQ(Pre-Qualification, 입찰적격심사) 단계에서 공사 관리 능력, 하자 발생 여부 등 기본적 평가 기준만 적용되고, 미술관처럼 특별한 형태나 드문 재료를 사용한 프로젝트 경험은 따로 구분되어 반영되지 않습니다. 실제로는 아파트를 주로 시공하는 업체가 공사를 맡게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래서 이런 특별한 공공건축물을 설계하거나 시공할 때마다 어려움이 생기곤 합니다. 시공자 입장에서도 처음 접하는 구조를 적용해야 하는 경우가 생기거든요. 그렇다면 경험이 풍부한 사람이 무조건 더 잘할 것인가 하면, 그것도 확신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저희가 하려는 새로운 시도를 지난 경험에 비춰 보수적으로 반대할 수도 있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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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A+1990uao


Q. 이번 서울시립 사진미술관을 비롯해 여러 공공건축과 도시재생 프로젝트를 진행해오셨는데요.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보셨을 때, 공공건축이 보다 나아지기 위해 어떤 점들이 더해지면 좋을지요?

그간 다양한 공공 프로젝트를 수행해왔지만, 이번 사진미술관 발주처는 건축에 대한 이해도가 매우 높으신 분들이었습니다. 오랫동안 이 프로젝트를 준비해오셨고, 예술가들과도 긴밀히 협업해오신 분들이라, 공간적인 도전이나 제안에 대해 수정하거나 간섭하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기능적인 측면이나 공사비와 관련해 무리가 있다고 판단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대안을 요청하셨고, 그에 대해 저희가 직접 수정안을 제시해 협의해왔습니다. 대부분은 그런 방식으로 진행됐고요.


물론, 예산이 더 넉넉했다면 더 좋은 품질로 구현할 수 있었겠지만, 공공 발주의 시스템상 현실적인 한계가 있습니다. 민간 프로젝트는 설계를 먼저 한 뒤, 그에 따라 시공비를 산출해 진행하지만, 공공은 예산을 먼저 수립하고, 설계를 시작합니다. 이 과정에서 예산은 과거 데이터를 기반으로 책정되지만, 실제 설계와 시공까지의 4~5년 사이의 물가는 달라집니다. 에스컬레이션 적용을 해주지만 최근처럼 공사비가 급등한 상황에서는 대응이 어렵습니다. 결국 문제는 공사비 자체라기보다는, 공사비가 바뀌었을 때 그걸 합리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시스템이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발주처도 지금의 예산으로는 힘들다는 걸 알지만, 근거 없이 예산을 늘리면 세금 낭비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어서 선뜻 결정하지 못하는 거죠. 그래서 공공 프로젝트는 공사비 사용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고, 유연한 시스템이 마련될 필요가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돈을 어떻게 쓰느냐의 문제죠. 좋은 공간 경험과 마감 품질을 위해 필요한 만큼은 충분히 투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일본의 공공건축을 보면, 아주 높은 품질의 자재와 마감을 통해 시민들로 하여금 좋은 공간에 대한 경험을 할 수 있게 합니다. 그들은 공공건축이 곧 복지라는 인식이 있어요. 그런 부분은 우리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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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지 스토리》전시 전경, 2025. 사진 이미지줌 ⓒ서울시립 사진미술관


Q. 공공건축물의 품질향상을 위해 사회 전반의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고 하셨는데, 이를 위한 현실적인 방법은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제도 개선’이나 ‘매뉴얼화’ 같은 말은 사실 그렇게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거예요. 왜냐하면 조례나 지침을 바꾸려면 합의 과정이 필요한데, 그건 시간도 오래 걸리고, 거기에 참여하는 사람들 모두가 공공건축이 왜 더 좋아져야 하는지 이해하고 있어야 하거든요. 출발점부터가 어렵죠.


그래서 저는 제도를 바꾸려면, 그보다 먼저 공공건축에 대한 사회 전반의 이해도를 높이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해요. 첫 단계는 교육입니다. 초 · 중 · 고등학교 교과서에서부터 시작해야 해요. 지금 우리나라 교육과정에 건축에 대한 제대로 된 교육이 거의 없어요. 건축을 기술자의 일, 엔지니어링 측면으로만 다루는 경향이 있죠. 공간이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설명하는 내용이 부족해요. 하지만 프랑스나 일본 같은 나라들은 그런 교육을 해요. 그렇게 해서 좋은 공간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쌓이면, 예산을 쓰는 방식에도 자유도가 올라갑니다.


예를 들어, 서울시에서 예산을 집행할 때 시의원이 결정을 하잖아요. 그 시의원이 지역 주민들의 표를 받아서 움직이는 구조인데, 사람들은 ‘호화청사’ 같은 말을 들으면 곧장 부정적으로 반응하죠. 공공에서 함부로 돈 쓰는 건 감시해야 하지만, 좋은 공간이 왜 필요한지, 어떻게 우리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는 설명이 부족해요. 그리고 그 설명이 어려운 이유는, 말로는 이해시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건축은 직접 경험해봐야 알 수 있어요. 좋은 공간을 경험해본 사람만이 그 가치를 압니다. 그런데 그게 비싸다고 해서 안 짓고 미뤄두면, 영원히 그 경험을 못 하게 되는 거죠.


일본의 공공건축을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은 깜짝 놀라요. 동네 도서관만 가봐도 알 수 있습니다. 직접 보면 그 퀄리티를 느낄 수 있거든요. 그래서 저는 답사가 곧 교육이라고 생각해요. 좋은 공간을 소개하고, 그 경험을 축적해야 해요. 그렇게 쌓인 공감대를 바탕으로, 예산을 어떻게 잘 쓸 수 있을지 논의해야죠.



Q. 좋은 건축물을 직접 경험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말씀, 너무 당연한 이야기인데도 새롭게 다가옵니다. 실제로는 공사비 현실만 강조되는 경우가 많은데요. 이런 경험이 쌓이면 건축문화의 전반적인 이해도도 높아지고, 설계비나 시공비 인상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 형성도 가능할까요?

저도 설계비가 지금보다 더 높게 책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설계자의 입장이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의 건축물이 완성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인력과 시간, 노력이 투입되는지를 알기 때문입니다. 공공 프로젝트는 민간보다 요구사항도 많고, 절차도 훨씬 복잡합니다. 그런데 오히려 설계비는 더 적게 책정되는 경우가 많죠. 더 나은 건축을 위해선 더 많은 연구와 실험이 필요한데, 현재 시스템은 이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흔히 ‘경제적인 집’을 짓자고 하면, ‘저렴하게 짓자’는 의미로 받아들여집니다. 하지만 정말 경제적인 집을 짓기 위해선 더 많은 고민과 실험이 필요합니다. 자동차도 좋은 경차를 만들기 위해선 막대한 연구개발비가 들듯, 건축도 마찬가지입니다. 비용을 줄이기 위해선 오히려 더 높은 설계 역량이 필요한데, 지금의 낮은 설계비용 구조로는 그게 불가능합니다.


설계비는 단순한 도면 작성 비용이 아닙니다. 수많은 전문가들이 참여하고, 수개월의 시간이 투입됩니다. 좋은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선 그에 걸맞은 예산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설계비는 대부분의 경우 공사비요율방식으로 책정되가 보니, 공사비가 낮으면 설계비가 낮아지는 구조입니다. 경제적 건축을 짓기 위해 노력은 더해야 하는데 설계비가 적으니 몰두할 수가 없지요. 때문에 적은 공사비의 공공건축은 더욱 어려운 상황이 되고 맙니다. 어떤 경우는 설계비를 올리기 위해 공사비를 높인다는 오해를 받기도 하구요. 공사비와 무관한 연구비 책정 방식과 같이 기간과 투입인원, 전문성과 창작기술력 등을 감안한 개선된 실비정액가산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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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지 스토리》전시 전경, 2025. 사진 이미지줌 ⓒ서울시립 사진미술관


Q. 개관후 주변 반응은 어떤가요? 개인적으로 이 프로젝트가 소장님께 어떤 의미였는지도 궁금합니다.

건물이 개관하고 나서 SNS나 인스타그램에 사진이 많이 올라오더라고요. 많은 분들이 찾아와주시고, 또 건물에 반응해주시는 걸 보니까 정말 반갑고 기분이 좋습니다. 사실 건물이 완공되면 한편으로는 마음이 차분해지기도 해요. 오랜 시간 동안 집중해서 해온 작업이 세상 밖으로 나간 거니까요. 아직 이 프로젝트가 제게 어떤 의미였는지 정확히 정의 내릴 수는 없지만,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세상 밖으로 나간 저 건물이, 오히려 우리를 바라보는 것 같다는 느낌이요. 작품이 작가를 만든다고 하죠. 이 프로젝트를 통해 아마 이전과는 다른 우리 설계사사무소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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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근주  |  일구구공 도시건축 건축사사무소(주)  |  1990uao.kr

충북대학교와 서울건축학교(SA)에서 건축수업을 받았으며 기오헌과 원오원에서 건축실무를 익혔다. 2010년부터 파트너 황정환 소장과 일구구공 도시건축(1990uao)를 운영하며 건축작업을 하고 있다. 서울역 4호선 문화예술철도를 비롯해 서울시립 사진미술관, 경기도박물관, 제주여상, 남해군 지역특화시설, 서울어린이대공원 식물원 등 공공사업 설계공모에 당선되었다. 청주시청 신청사 국제 현상설계에 최종 지명되어 소규모 사무소 연합의 대형 설계 참여 가능성을 알렸고 서울 골목길 재생사업, 세종대 캠퍼스 타운 사업 등에 당선되어 도시재생에도 적극 참여하였다. 최근 NOB라는 자체 도시건축 리서치 툴을 개발하여 새로운 건축 모형 발굴을 시도하고, 한편 시민 대상 건축학교를 운영하는 등 건축의 미래가치와 대중 소통 방안도 실험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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